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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_서문 , 창작의 원동력, 21세기 소설의 발명, 총평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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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_서문 , 창작의 원동력, 21세기 소설의 발명, 총평

기린100 2023. 10. 2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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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하루키의 대표적인 수필집중의 하나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우리나라에 2016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나는 이 책을 2018년 11월, 신촌에 업무를 보러 나간 길에 약속시간이 남아 알라딘에 가서 책 구경을 하다가 구매를 하였다. 그때는 내가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었을 때여서 마음의 안정을 위해 책을 항상 옆에 들고 시간이 남을 때마다 들고 봤던 때이고 그 대부분은 하루키책을 보았다. 그 책 속에서 하루키는 그동안 내가 알던 소설과는 다른 패턴을 보여 주었고 그 구성은 너무나도 신선, 아니 신선함을 넘어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그런 작가를 이해하고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가 왜 글을 쓰게 되었고 그 이전엔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루틴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었고, 그의 음악적 지식은 어떤 연유로 넓혀졌고, 뉴욕 타임스의 북리뷰에서 나온 것처럼 "하루키는 21세기 소설을 발명했다"라고 하는 그 는 어떤 사람인 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전만 하더라도 소설은 나에게 손이 잘 가지 않는 분야이기도 하였고 관심도 없는, 약간의 시간낭비 같은 일이라고 생각되던 시기가 있었다. 책이라 하면 사회과학이나 자기 개발서, 아니면 세계사를 다룬 책들이 그동안 나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어떤 연유로 인하여 문학적 소양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나를 변화하게 만들었고 그 대표적인 작가가 무리키미 하루키였던 것이다. 
 
 
 
 

창작의 원동력

 
 
 
이 책은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산문의 형태로 어디서 부터 읽어도 되는 그런 부담 없는 형태의 글이다. 특히 그의 많은 작품을 번역한 양윤옥 씨가 번역을 하여서 그의 문체나 생각을 가장 잘 옮겨왔다고 생각된다. 모든 일은그 시작이 있고 계기가 있다. 아내와 7년간 재즈바를 운영하며 간간히 그곳에서 습작을 쓰던 그는 불현듯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다가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써 보기로 하였다. 글을 쓰고 1년 만에 1979년에 신인 문학상을 받게 되고 본격적으로 소설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글을 쓸 때는 워드 프로세서나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을 때여서 원고지에 세일러 만년필을 이용해서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갔다고 하니 그 감성이 남달랐을 듯 하다. 하루키는 여태 글을 쓰면서 한 번도 보통 우리가 이야기하는 슬럼프를 겪지 않았다고 한다. 항상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생활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던 걸로 그는 유명하다. 일정한 시간대에 러닝을 하고 하루에 일정한 매수의 글을 쓰며 그 루틴을 지키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렇기 때문에 큰 굴곡 없이 글을 쓸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때문에 그가 회고하는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은 그리스 각지의 카페 테이블, 시끄럽고 복잡한 호텔에서 커피얼국을 묻히며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런 것들을  강한 개인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라고 하니 이런 그의 창작적 욕구가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생각된다. 
 
 
 
 

총평

 
 
 
그는 외국에서 책을 내면서 가장 흐믓했던일이 "무라카미의 책은 어찌 되었든 오리지널이다. 다른 어떤 작가의 소설과는 다르다"라고 말해준 것이라고 한다. 그 만의 스타일을 가졌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기쁨, 찬사였다고 하는 그의 말을 보면 나만 그의 독창성과 신선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책을 읽어본 대다수의 사람들이 같이 느끼는 일종의 충격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2000년 초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에 일본을 출장 갈 일이 있었다. 그때도 역시 하루키 소설에 푹 빠져 있을 때였고 동시에 일본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유행이 되기 막 시작 할 때 여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  기적"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을 때였는데 그때 도쿄에서 통역을 해준 대학원생에게 하루키가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는 소설가인가 한번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게이고의 인기도 살짝 같이 물어봤었는데, 그 대학원생은 게이고는 잘 모르고 하루키는 잘 알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문학이나 소설에 관심이 없던 학생이었을 수 도 있으니 나의 경험을 가지고 그 인기나 유명함을 판단하는 것 무리일 수 있다. 또 그 인기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 주는 개개인의 영감과 감명은 그 세속적인 판단과는 아주 다른 나만의 교훈일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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